전체 글36 영화 싸움의 기술 리뷰 및 총평 1. 루저의 세계에서 작은 ‘한 방’을 꿈꾸다: 성장 대신 버티기의 청춘영화 〈싸움의 기술〉은 흔히 말하는 ‘성장 영화’의 문법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재민(백윤식이 아닌 임형준)과 병규(백윤식)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루저들이다. 학교·가정·사회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상처와 무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영화는 바로 이 버티기의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담아낸다.재민은 학교에서 폭력의 대상이 되고, 집에서는 무능한 어른들의 그림자 아래 짓눌린다. 자신을 지켜줄 것도, 기대할 것도, 미래를 위해 준비할 것도 없다. 병규는 어른이지만, 어른답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삶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 정체성을 잃고, ‘싸움’이라는.. 2025. 11. 24. 영화 내부자들 리뷰 및 총평 1. 권력 카르텔의 민낯: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손’은 누구인가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권력 구조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정치, 재벌, 언론, 조직폭력배가 하나의 생태계처럼 얽혀 있는 구조를 ‘내부자’들의 시선에서 보여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작품의 설정은 허구이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배신, 거래의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현실적이다.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정의로운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이익을 좇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공공의 선이나 국가의 미래 같은 거창한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행동을 움직이는 힘은 철저히 개인적 욕망이고, 그 욕망은 권력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상호.. 2025. 11. 24. 영화 친구2 리뷰 및 총평 1. 12년 뒤, 다시 시작된 비극 — “우정”의 잔해 위에 선 남자들곽경택 감독의 〈친구2〉는 전설적 작품 〈친구〉의 후속작으로, 전편의 감정적 여운을 이어받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의 비극을 그린다. 이 작품의 시작점은 바로 **‘우정의 부재’**다. 전편에는 준석·동수·상택·중호라는 네 명의 친구가 중심에 있었지만, 〈친구2〉는 더 이상 ‘친구 이야기’가 아니다.대신, 전편에서 남겨진 피의 유산—폭력의 구조, 조직 논리, 배신의 상처—가 새로운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탐구한다.영화는 **준석(유오성)**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 세대의 조직 세계와, 친구 동수를 죽였다는 누명 속에서 모든 걸 잃은 인물이다. 감옥에서 보낸 17년의 시간은 준석을 더 단단하고 냉혹하게 만들.. 2025. 11. 24. 영화 친구 리뷰 및 총평 1. 청춘의 우정에서 비극으로—네 친구의 갈림길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부산의 실제 정서를 기반으로, ‘친구’라는 단어가 얼마나 복잡하고 아픈 의미로 변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단순한 우정 이야기처럼 보인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네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어울려 놀고, 사춘기의 불안함을 함께 겪으며 성장한다. 이 시기의 영화는 다소 유머스럽고, 사투리 특유의 리듬이 살아 있어 친근한 분위기를 만든다.하지만 〈친구〉의 묘미는 바로 그 평범함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세밀하게 추적하는 데 있다.네 사람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사회는 그들을 완전히 다른 길로 내몬다. 준석은 아버지가 조폭 보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고, 동수는 가난한 집안환경 속에서 점점.. 2025. 11. 24. 영화 부산행 리뷰 및 총평 1. 달리는 지옥열차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민낯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힘은 좀비 액션 자체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인간 집단이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데 있다.KTX라는 제한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압축된 사회’이며, 각 칸은 서로 다른 계층·세대·가치관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이들을 위기로 밀어넣고,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생존만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주인공 석우는 처음부터 이기적이고 무심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존재’라기보다 ‘일에 치이고 감정이 메마른 가장’으로 묘사된다. 이때 딸 수안은 그런 아버지를 비판하며, 영화는 두 사람.. 2025. 11. 24. 영화 박열 리뷰 및 총평 1. 일제의 광기 속에서 탄생한 두 ‘괴물’ —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등장이준익 감독의 〈박열〉은 1923년 관동대지진과 그 직후 일본 정부의 조선인 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피해자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오히려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시선을 통해 일제의 민낯을 까발린다.서사는 박열이 이미 ‘일본의 적’으로 지목받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과 선언, 조직 활동이 오히려 일본 당국의 공포심을 자극해 사건이 증폭되는 흐름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즉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로서 영화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는 인물이 서 있다.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영웅 서사’가 아니라 피해를 미화하지 않는 강단 있는 태도에 있다. 박열은 피해자이지만.. 2025. 11. 23.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