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2년 뒤, 다시 시작된 비극 — “우정”의 잔해 위에 선 남자들
곽경택 감독의 〈친구2〉는 전설적 작품 〈친구〉의 후속작으로, 전편의 감정적 여운을 이어받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의 비극을 그린다. 이 작품의 시작점은 바로 **‘우정의 부재’**다. 전편에는 준석·동수·상택·중호라는 네 명의 친구가 중심에 있었지만, 〈친구2〉는 더 이상 ‘친구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전편에서 남겨진 피의 유산—폭력의 구조, 조직 논리, 배신의 상처—가 새로운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탐구한다.
영화는 **준석(유오성)**이 감옥에서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아버지 세대의 조직 세계와, 친구 동수를 죽였다는 누명 속에서 모든 걸 잃은 인물이다. 감옥에서 보낸 17년의 시간은 준석을 더 단단하고 냉혹하게 만들었고, 그의 눈빛에는 이미 ‘살아남는 자의 감각’만이 남아 있다.
그런 준석 앞에 **성훈(김우빈)**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성훈은 동수의 숨겨진 아들이자, 폭력과 방치 속에서 성장한 또 다른 비극의 산물이다.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곽경택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폭력의 세습이라는 주제를 상징한다.
성훈은 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성장했고, 그의 삶은 폭력, 빈곤, 방임으로 얼룩져 있다. 그런 성훈이 준석을 따르며 조직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선후배 관계가 아니라 “전편에서 무너진 우정의 잔해를 물려받은 다음 세대의 비극”을 보여준다.
〈친구2〉는 여기서부터 전편과는 완전히 다른 톤을 띠기 시작한다. 청춘의 우정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폭력과 고독, 그리고 복수뿐이다.
2. 폭력의 세계가 만든 두 남자의 그림자 — 조직, 배신, 그리고 진실
〈친구2〉의 중반부는 준석과 성훈이 각자의 방식으로 폭력의 세계에 스며들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동시에 밀어내는 긴장감을 보여준다.
준석은 조직의 재건을 꿈꾸지만, 과거의 실수와 배신의 기억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힌다. 그는 강하고 냉혹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구 동수를 죽였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준석은 성훈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 안에는 연민, 책임감, 죄책감, 그리고 동수의 흔적을 본 듯한 괴로움이 섞여 있다.
성훈은 조직 세계에 들어갈 이유도, 목적도 뚜렷하지 않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이며, 가진 것이 없기에 폭력에 기대고, 준석이 주는 인정에 매달린다. 성훈이 준석을 따르는 관계는 단순한 존경이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주길 바라는 욕망’과 ‘인정받고 싶다는 생존적 본능’**이 겹쳐져 있다.
이 시기 영화의 주요 갈등은 조직 내 권력투쟁과 세대 간 폭력성의 전이다.
전편에서 준석의 아버지(조직 보스)와 그를 따르는 구성원들이 만들어놓은 비정한 세계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지금은 더 잔혹하고 생존 경쟁이 극단화된 상태다. 준석이 조직을 다시 장악하려는 시도는 ‘아버지의 길을 잇는 행위’인 동시에, ‘과거를 청산하고 싶은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곽경택 감독은 이 둘 중 어느 것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준석의 욕망은 오래된 조직의 부패와 내부 배신, 그리고 성훈에게 과거의 죄를 들키는 순간 무너져내린다. 성훈은 준석을 따르면서도, 그가 진실을 숨긴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이라는 사실 앞에서 갈등한다.
이 갈등은 결국 폭력이라는 방식으로 터져나오며,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친구2〉는 이런 과정을 통해 폭력 세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곳에는 의리도, 우정도, 심지어 복수의 완결성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권력, 상처, 세습된 폭력뿐이다.
3. 피로 이어진 비극의 결말 — 세대의 저주, 끊어지지 못한 폭력
〈친구2〉의 결말은 전편보다 훨씬 어둡고 잔인한 정서를 가진다. 전편은 우정이 파괴되었다는 심리적 비극이 중심이었다면, 후속작은 ‘폭력의 세습’이라는 더 큰 구조적 비극을 드러낸다.
준석은 자신의 모든 선택이 결국 비극을 불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의 냉혹함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였지만, 그 결과는 동수의 죽음, 친구의 배신, 조직의 해체, 그리고 성훈이라는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성훈은 준석에게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보았고, 그 때문에 준석을 받아들이다가도,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폭발한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채, 전혀 예상치 못한 비극적 충돌을 맞이한다.
곽경택 감독은 〈친구2〉의 마지막을 통해 매우 냉정한 메시지를 남긴다:
“폭력은 세대를 건너뛰어도 계속 남는다.”
전편이 “친구가 친구를 죽게 만든 비극”이었다면,
후속작은 “그 비극의 잔해가 다음 세대를 파괴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보여준다.
성훈의 최후와 준석의 파국은 단순한 해피엔드나 성장 서사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며, 관객에게 깊은 허무와 질문을 남긴다.
“이 모든 비극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우정을 파괴한 폭력의 씨앗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영화는 결코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전편보다 더 넓은 시야—부산 조직 세계, 가정 폭력, 가난, 방임, 과거의 원죄—를 통해 폭력의 근원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친구2〉는 ‘범죄 액션’이라기보다는 ‘세대 간 비극의 구조 분석’에 가깝다.
✦ 총평
〈친구2〉는 전편의 감동을 재현하기보다는, 전편이 남긴 상처 위에 새로운 비극을 덧씌우는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다.
준석과 성훈이라는 두 인물의 만남은 우정이 아니라 폭력의 굴레가 이어진 결과이며, 영화는 이를 통해 폭력의 세습, 부재한 가족, 부정된 진실, 그리고 파괴된 인간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밀도 있게 그린다.
공감과 울림의 정서로 다가왔던 〈친구〉와 달리, 〈친구2〉는 더 냉혹하고 비관적이며, 인간의 상처와 폭력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완성도에 대한 호불호는 존재하지만, ‘우정 이후의 세계’를 탐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후속작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