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달리는 지옥열차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민낯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힘은 좀비 액션 자체보다, 좁은 공간에 갇힌 인간 집단이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는 데 있다.
KTX라는 제한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압축된 사회’이며, 각 칸은 서로 다른 계층·세대·가치관이 뒤섞여 있다. 영화는 이들을 위기로 밀어넣고,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기 생존만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석우는 처음부터 이기적이고 무심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존재’라기보다 ‘일에 치이고 감정이 메마른 가장’으로 묘사된다. 이때 딸 수안은 그런 아버지를 비판하며, 영화는 두 사람의 갈등을 통해 부성(父性)의 회복이라는 주제를 준비한다.
반대로, ‘절대 악’처럼 표현되는 용석(김의성)은 생존 본능이 극대화된 캐릭터로, 위기 속에서 자기중심적 탐욕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그는 계속해서 타인을 밀어내거나 속이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죽음이 발생한다. 영화는 용석을 단순 악역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기적인 생존 논리가 얼마나 쉽게 집단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가”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극한의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지만, 영화의 핵심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선한 선택은 생존과 직결되지 않으며, 오히려 희생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악한 선택은 일시적으로 유리해 보이지만, 결국 더 큰 파국을 불러온다. KTX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윤리와 생존본능이 충돌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며, 〈부산행〉은 그 실험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2. 서로 다른 인간 군상들이 만든 ‘희생의 역설’
〈부산행〉의 가장 감동적인 지점은 여러 인물의 희생이 결코 ‘눈물 짜내기’가 아니라, 각각의 신념과 성격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점이다.
상화(마동석)는 강인함의 상징이다. 그는 자신의 힘을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며, 위험한 구역을 돌파할 때마다 가장 앞에서 싸운다. 그의 희생 장면은 단순히 슬픔의 장면을 넘어, “선한 힘이 얼마나 귀중한가”라는 메시지로 확장된다. 상화는 생존 확률을 고려하기보다, ‘누군가는 앞장서야 한다’는 원칙을 행동으로 증명한다.
그의 죽음은 결말부의 정서적 울림을 준비하는 중요한 장치다.
또 다른 인물인 성경(정유미)과 노인 자매, 노동자, 학생 커플 등은 ‘살아남는다’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방식은 각기 다르다. 그 가운데 성경은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캐릭터로, 석우와 수안이 변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녀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신뢰와 도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노인 자매는 인간적 회한이 응집된 캐릭터다. 자매 중 한 사람은 계속해서 타인을 돕고, 다른 한 사람은 냉소적이지만 결국 가장 극적인 선택을 한다. 이들의 결단은 용석이 이끄는 이기적 집단의 폭력성을 폭로하는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배제당한 이들은 결국 어떤 절망에 도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중반의 ‘칸 돌파’ 시퀀스는 〈부산행〉이 가진 장르적 강점을 집대성한 장면이다. 어둠, 빠른 전환, 한정된 공간, 조용해야 살아남는 규칙 등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연출로 관객에게 긴장과 몰입을 선사한다. 이 시퀀스에서 상화·석우·민수 3인의 조합은 ‘협력해야만 생존한다’는 공동체적 메시지를 드러내며, 극 후반의 대비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이처럼 영화의 중반부는 연출적 쾌감과 인간 심리의 충돌이 절묘하게 겹쳐져 있으며, 인물들의 선택이 각기 다른 ‘윤리적 색’을 띤다. 그 중 일부는 생존을, 일부는 죽음을 가져온다. 하지만 영화는 생존 자체가 ‘승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그 사람의 삶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철학적 메시지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3. 파멸과 구원 사이—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진짜 가치
영화의 마지막은 ‘인간의 회복’이라는 정서를 극대화한다. 특히 석우의 변화는 영화의 핵심 정서다. 그는 처음에는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는 냉정한 회사원이었지만, 연속적인 희생과 죽음을 목격하고, 상화를 비롯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의 가치에 눈뜬다.
용석의 자기중심적 생존 전략은 결국 석우가 가장 극단적으로 거부해야 할 ‘과거의 자기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석우와 용석의 마지막 충돌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석우의 인간성 회복을 상징하는 의식적 순간이다.
석우가 수안을 지키기 위해 감염을 받아들이는 결말은 감독이 강조한 ‘부성의 완성’이자 ‘이타적 선택의 최후 형태’다. 그는 죽음 직전, 수안의 이름을 되뇌며, 처음으로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감정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큰 울림을 주는데, 이는 영화가 단순한 좀비액션을 넘어 부성·희생·공동체·책임감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생존자가 어린 수안과 임신한 성경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연상호 감독이 말한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다.
수안이 마지막에 불러주는 노래는 죽음을 넘어선 인간애의 표식이자, 그동안 상실로 가득했던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생명의 목소리다. 군인들이 두 사람을 향해 총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 역시, 이 두 인물이 더 이상 ‘생존자’가 아니라 미래를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총평
〈부산행〉은 단순한 재난·좀비물이 아니다.
좀비라는 장르적 언어를 빌려 한국 사회가 가진 이기심, 집단주의, 배제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동시에 희생과 연대를 통해 인간성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상업영화의 오락성과 사회적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균형을 이루고, 배우들의 연기와 연상호 감독의 연출이 조화롭다.
감정의 파고, 액션의 긴장감, 메시지의 무게가 모두 잘 융합되어 있으며, 개봉 당시뿐 아니라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힘을 잃지 않는 현대 한국 영화의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