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리즈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비주얼 아포칼립스
〈레지던트 이블 5〉는 시리즈 특유의 과감한 스타일과 영상적 화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다. 이번 편은 전작보다 더 거대한 스케일과 실험적인 공간 연출을 선보이는데, 그 중심에는 ‘언브렐라의 가상 테스트 존’이라는 독특한 무대가 있다. 도쿄, 모스크바, 뉴욕, 교외 마을 등이 거대한 돔 안에 인공적으로 재현된 공간이라는 설정은 기존의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한층 넓히는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듯한 스타일 액션”을 하나의 연속된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특히 오프닝부터 역재생된 전투 시퀀스로 들어가는 방식은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슬로모션과 리버스 효과, 폭발과 총격이 어우러진 이 장면은 폴 W.S. 앤더슨 감독의 스타일리즘을 극대화한 대표적 예다. 관객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화면은 이미 폭발적인 비주얼을 쏟아내며 ‘레지던트 이블식 전쟁’의 분위기를 장착한다.
더불어 이 영화는 스토리보다 체험에 가까운 전개 방식을 택한다. 각 구역은 하나의 미션처럼 구성되어 있고, 앨리스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깨듯 적을 타파하며 나아간다. 이는 결국 원작 게임의 정서를 영화적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구현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게임처럼 구성된 공간, 특정 구역마다 배치된 보스 몬스터, 급작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적 패턴 등은 시리즈 팬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다.
이 작품은 확실히 서사적 완성도보다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과거 기억들이 왜곡된 형태로 반복 재현되는 설정은 의외로 심리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예컨대 ‘가짜 가족’으로 구성된 교외 구역은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의 환영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잔혹하게 드러낸다. 이 부분은 시리즈 특유의 ‘인간 vs 실험체’ 구도를 가장 감정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2. 캐릭터들의 귀환과 액션의 정점
〈레지던트 이블 5〉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시리즈 주요 인물들의 대거 재등장이다. 이미 죽었거나 사라졌던 캐릭터들이 복제체로 다시 등장하면서 “시리즈의 총집합전”이라는 느낌을 준다. 질 발렌타인의 재등장은 시각적으로도 강렬하다. 하이힐 전투복과 가슴의 스파이더 디바이스로 상징되는 그녀의 모습은 원작 게임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며 팬서비스적 매력을 극대화한다.
특히 질과 앨리스의 최종 격투 장면은 본편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속도, 합의된 동작, 와이어 액션, 체술이 결합된 전투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연출된다. 이 장면은 시리즈 전체에서 손꼽히는 액션 시퀀스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며, 감독의 스타일이 가장 정교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또 다른 볼거리는 ‘라스 플라가’ 개조 좀비들이다. 이전 시리즈와 달리 이들은 총칼을 들고 조직적인 전술로 움직이며, 전투 차량과 오토바이까지 동원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단순한 좀비물에서 벗어나, 거의 전쟁 영화에 가까운 화력전을 보여준다. 모스크바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폭발과 총격, 난전이 뒤엉키며 마치 FPS 게임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레온 S. 케네디와 에이다 웡의 실사 등장은 팬들에게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다. 이들이 보여주는 전투 방식은 앨리스와는 결이 다르다. 에이다는 동양 무술과 사격술이 결합된 우아하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레온은 전형적인 특수부대 스타일로 화면을 채운다. 캐릭터별 강점이 뚜렷하게 드러나기에 팀 플레이의 재미 또한 살아난다.
무엇보다 이번 편은 시리즈의 ‘과잉 액션’ 미학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전투가 모두 과감하고 빠르며, 공간과 상황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지루함이 거의 없다. ‘스토리는 얇아도 액션은 확실하다’라는 시리즈의 명성을 가장 충실히 실현한 작품이 바로 이 5편이라고 할 수 있다.
3. 거대한 결전의 전초전으로서의 의미
〈레지던트 이블 5〉의 서사적 기능은 ‘결전의 준비 단계’에 가깝다. 이야기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앨리스가 테스트 존에서 탈출하고, 언브렐라와의 최종 전투를 위한 세력 구도를 새롭게 정리하는 과정이 중심이다. 이 영화가 끝날 무렵, 앨리스는 웨스커와 한시적 동맹을 맺고, 인류 최후의 거점인 백악관에서 최종전을 준비한다. 이는 곧바로 6편으로 이어지며, 5편은 사실상 ‘대전쟁을 향한 거대한 브리지’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영화는 깊이 있는 드라마보다는 세계관과 액션의 확장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를 약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팬층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평가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5편은 시리즈의 정체성—즉 스타일과 액션, 게임적 연출, 시각적 과잉—을 가장 자신 있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다만 리부트와 비교했을 때, 5편은 감정보다 체험을 우선한 작품이다. 캐릭터의 내적 성장이나 갈등은 최소한으로 유지되고, 전개는 미션 중심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시리즈 팬에게는 만족감이 크지만, 독립된 영화로 볼 경우 감정적 밀도는 낮게 체감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지던트 이블 5〉는 시리즈 중 가장 ‘만화적 쾌감’을 잘 구현한 작품이다. 시각적 완성도, 게임적 연출, 캐릭터 총집합, 테스트 존이라는 독창적인 공간 구성 등은 다른 좀비 액션 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만든다. 또한 마지막에 보여준 “백악관에서 시작되는 최후의 전쟁”은 팬들에게 거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며 영화의 임무를 완수한다.
결국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객의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깊은 서사와 감정 드라마를 찾는 이에게는 아쉬울 수 있지만, 시리즈의 스타일과 에너지, 세계관의 확장을 즐기는 관객에게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화려함, 과감함, 그리고 시리즈 팬서비스가 극대화된 〈레지던트 이블 5〉는 좀비 액션 장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스타일을 구축해낸 작품으로 남는다.